유엔저널 김학영 기자 |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은 손끝의 정성과 세월의 깊이가 녹아 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한다. 무형문화재 제1호 칠화장漆畵匠 보유자 청목靑木 김환경金煥京 선생은 그 진가를 오롯이 증명해낸 인물이다. 재단법인 청목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도 활동 중인 그는, 지난 60여 년간 오직 옻칠과 채화칠기의 복원과 창작에 매진해온 우리 시대 진정한 장인이다.

칠화장漆畵匠이란?
칠화漆畵란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을 정제하고, 천연 안료를 배합하여 색칠을 만들고 기물에 무늬를 그려내는 전통 예술이다. 이 기법을 통해 완성된 공예작품을 ‘채화칠기彩畵漆器’라 하며, 화려하면서도 은은하고 깊이 있는 색감이 특징이다. 하지만 그 복잡한 제작과정과 까다로운 재료의 특성 탓에, 오직 오랜 수련과 장인정신을 지닌 이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고귀한 예술 분야로 남아 있다.

“칠은 우리의 삶이었다”
김환경 선생은 1975년부터 채화칠기 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잊혀가던 전통기법을 오늘날에 되살리는 데 앞장서 왔다. 한때 우리의 안방을 지키던 옻칠 가구와 자개장의 기억은 이제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그는 채화칠기의 예술성과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며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공예를 넘어선 회화적 미감과 철학을 품는다. 특히 일월도 장롱, 십장생도, 화조화, 청록산수 등의 작품은 민화의 생동감과 전통 옻칠의 깊은 색감을 결합한 대표적인 예술공예품으로, 예술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운보 김기창이 인정한 예술혼
국민화가 운보 김기창은 생전에 청목 선생을 두고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열정과 예술혼을 지닌 사람"이라 평한 바 있다. 실제로 청목은 운보의 그림을 바탕으로 채화칠기 회화 작업을 시도했고, 그것은 마치 고전 동판화가 각사에 의해 재해석되듯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은 예술로 재탄생했다.
칠예의 부활, 산업화를 꿈꾸다
옻칠은 단순히 전통을 잇는 소재가 아니다. 항암, 항균, 항산화, 전자파 차단 등 현대 의학과 과학에서도 그 효능이 증명된 천연 자원이다. 청목 김환경 선생은 옻칠 제품이 단순한 예술품을 넘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생활 소품과 산업 제품으로 발전하길 소망한다. “그릇부터 휴대폰 케이스, 가방까지, 옻칠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이로운 전통 소재입니다. 대기업이 함께 한다면 산업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세계로 나아가는 채화칠기
현재 청목 선생의 작품은 영국 여왕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저명인사들이 소장하고 있으며, 개인전 역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 기법을 고수한 그의 작품은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을 만큼 귀하고 정성이 담긴 예술품이다.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손끝의 철학
청목 김환경 선생의 예술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장인으로서의 고집,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유산 복원의 사명감에서 비롯된다. 그는 말한다. “이제는 칠예를 통해 한국의 문화적 품격을 새롭게 각인시킬 때입니다.”
그의 손에서 피어난 칠화는 과거를 이어 오늘을 살아 숨 쉬고,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전통의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