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칼럼] 불교국가 캄보디아, 자비의 나라가 범죄의 소굴이 되다

  • 등록 2025.10.19 18: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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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자보다 더 무서운 건 침묵한 권력자다”
– 외국인 여권 쓰레기통서 무더기 발견
- “관광의 천국에서 범죄의 지옥으로”

유엔저널 김학영 기자 |  캄보디아는 국민의 95% 이상이 상좌부 불교를 신앙하며, 자비慈悲와 중도中道의 가르침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는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오늘의 캄보디아는 자비보다 탐욕이, 중도보다 부패가 더 강하게 작동하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인 납치, 인신매매, 온라인 도박, 마약 거래 등 각종 범죄가 급증하며 국가는 사실상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범죄자와 공무원이 결탁하고, 법은 돈 앞에서 무력해지며, 피해자는 언제나 외국인이다. 자비의 나라는 이제 “불법佛法의 이름으로 가려진 무법無法의 땅”이 되어버렸다.

 

2025년 9월, 프놈펜 시내의 한 쓰레기 수거장에서 외국인 여권 수십 권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한국·일본·중국·태국 등 여러 나라의 여권이 함께 섞여 있었고, 그중 상당수가 한국인 명의였다. 현지 언론은 “범죄조직이 인신매매나 온라인 도박에 연루된 외국인의 여권을 압수하거나, 가짜 고용사무소를 통해 여권을 수집했다가 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국 외교부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캄보디아 내 한국인 여권 분실 및 도난 신고 건수는 350건 이상으로, 전체 재외국민 분실 신고의 20%를 넘는 수치다. 여권은 단순한 신분증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보증하는 ‘국민의 생명권’이다. 그 여권이 길가의 쓰레기통에서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은 단순한 행정 실패가 아니라, 국가 주권의 모욕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범죄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권력층의 침묵이다. 현지 경찰과 세관, 지방 공무원 중 일부가 범죄조직과 결탁해 수사 정보를 넘기거나 범인을 보호했다는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범죄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침묵한 권력자다.

 

불교국가를 자처하는 정부가 탐욕의 늪에 빠진 관료를 징계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더 이상 “법法의 나라”가 아니다. 국제사회는 캄보디아 정부에 묻고 있다. “자비의 나라라면, 왜 그 자비를 범죄 피해자에게 베풀지 못하는가.”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가 도망쳐야 하는 나라는, 이미 정의를 잃은 나라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캄보디아는 ‘동남아의 숨은 보석’으로 불리며 배낭여행자들의 성지였다. 그러나 이제 외국인들은 말한다.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함정이었다.” 최근 3년 사이 외국인 대상 범죄는 400% 이상 증가했고, 현지 노동시장에는 가짜 취업 알선, 감금형 노동착취, 마약 운반 강요 등 국제범죄가 다양화되고 있다.

 

여행객이 납치되고, 교민이 협박을 당하며, 경찰에 신고해도 ‘합의금’을 요구받는 현실 이다. 이것이 과연 불교국가가 세상에 보여줄 얼굴인가. 사건이 터진 뒤 ‘뒤늦은 대응’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캄보디아 내 ‘교민안전센터’ 상설화, 현지 경찰–한국 경찰 합동협력요원 파견, 형사사법공조협정 체결 등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또한 캄보디아 내 불교사찰과 협력해 범죄 피해 외국인과 노동자들이 임시로 피신할 수 있는 ‘불교 인도주의 쉼터’를 개설하는 것도 불교적 자비 실천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외교력”, 즉 예방 외교(Prevention Diplomacy)가 필요하다. 안전은 사후 조치가 아니라, 사전 약속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국민의 생명은 어디서든 국가가 지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캄보디아의 거리에서는 종종 무너진다. 이제 외교, 불교,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야 한다. 범죄 없는 불교국가, 외국인이 안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경 없는 생명안전망(Global Safety Net)을 세워야 한다.

 

캄보디아가 진정한 불교국가로 다시 서려면, 그 첫걸음은 거창한 개발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여권은 곧, 인간의 존엄과 불교의 자비가 함께 버려진 상징이다. 이제 캄보디아는 그 여권을 다시 주워 들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한 장의 여권이 아니라, 한 생명, 한 믿음, 그리고 한 국가의 명예이기 때문이다.

 

필자 담화총사曇華總師
“부처의 자비는 약자의 눈물에서 시작된다.”

김학영 기자 12345hy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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